AZUR
프란츠 마르크와 바실리 칸딘스키. 20세기 초, 문화·예술은 독일을 중심으로 돌아갔다. 이웃하는 오스트리아나 프랑스의 예술가들도 독일을 자주 드나들었다. 특히 저 둘은 각별한 사이였다. 취향과 관심사가 겹치는 지점이 많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바실리 칸딘스키는 말을 사랑했고, 프란츠 마르크는 기사 문화에 매혹돼 있었다. 둘은 파울 클레, 아우구스트 마케 등의 동료 예술가들을 끌어들여 ‘청기사파’를 만들기도 했다. 프란츠 마르크의 <푸른 색의 말> 그림은 청기사파의 문장과도 같았다. 둘 다 푸른색을 끔찍이도 좋아했기에, 푸른 말이다. 프란츠 마르크와 바실리 칸딘스키는 표현주의를 추구했는데, 그들의 짙고 깊은 정서를 강렬히 드러내기에 푸른색만 한 색이 없었다. <푸른 색의 말>에는 검고 푸른, 보랏빛과 뿌연 잿빛이 뒤섞인 말이 서 있다. 인상을 종합해 말하자면 어두운 푸른색, 네이비다.
네이비는 그런 색이다. 여러 개의 색을 품고 있고, 그 색의 조합이 때론 균일하지가 않다. 색을 만드는 작업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들이라도 누가 만드느냐에 따라, 언제 만드느냐에 따라 밝고 어두움이, 선명하고 흐릿함이 각기 다른 네이비가 나오지 않을지. 밤하늘, 무스카리Muscari꽃, 칼륨, 청자, 블루베리, 사파이어, 지중해…. 그 대상의 색을 표현할 때, 네이비라 할 수 있는 것 또한 무한하다. 인공적으로 만든 색이 아니라, 이미 자연이 가지고 있는 색 중 하나이기도 한 셈이다.
네이비, 네이비 블루, 다크 블루. 부르는 이름도 여럿이다. 프랑스어 중에 ‘아주르Azur’라는 단어가 있는데, 이 단어가 좀 더 네이비의 속성에 어울리는 표현일지도 모른다. 사전적 의미로 ‘sky’,‘deep blue’, ‘짙푸르다’ 정도인데, 프랑스 남동부 지역 코트다쥐르Côte d’Azur를 떠올리면 제법 들어맞는다. 실제 그 지역의 하늘과 바다의 색이 하늘색, 바다색이려니 하게 마련인데, 지중해가 초록과 보라와 검정 등이 섞여 짙은 푸른색을 띠니 말이다.
네이비, 혹은 아주르는 색의 복잡 미묘함만큼 이걸 사용할 때의 효과 내지 정서나 상징성 또한 특별하다. 남성복 편집매장의 한태민 대표는 평소 네이비 컬러를 잘 입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흔히 가장 격식 있는 색으로 블랙을 꼽고 공식적인 자리에 블랙 컬러 의상을 입는데, 한태민에겐 네이비가 블랙을 대체한다. “믿음, 유머, 신뢰. 이들을 동시에 전달할 수 있는 색은 짙은 푸른색뿐이다.” 얼마 전에도 한 행사장에 어두운 블루, 언뜻 블랙으로 보이는 슈트를 입고 왔던 그다. 엘비스 프레슬리 또한 공식 행사장에 설 때, 다른 아이템은 몰라도 슈즈만큼은 네이비 컬러로 된 것을 즐겨 신곤 했다. 지금이야 남자들의 슈즈 컬러가 다양해졌지만, 그 당시 엘비스 프레슬리로서는 약간 전복을 꾀한 거다.
지난 독일 월드컵에서는 이탈리아 대표 팀이 네이비 슈트를 맞춰 입고 맵시를 뽐냈다. 패션 디자이너 도미니코 돌체와 스테파노 가바나가 이탈리아 대표 팀을 위해 지어준 슈트였다. “아버지가 성년이 된 아들을 데리고 첫 양복을 맞추러 올 때, 열에 아홉이‘남색’을 주문한다. 아버지로서 아들의 삶이 건승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가 아닐지. 미래에 대한 계획과 구상을 ‘청사진’이라 부르듯이, 푸른색은 희망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지 않나. 또, 어떤 자리에서 입어도 예를 갖추되, 너무 과하지 않은 색이기도 하다.”스무 살이 되기도 전에 부산 국제시장에서 재단사를 시작해 지금껏 40년 가까이 양복을 지어온 이명우를 만났을 때다. 그는 ‘남색’ 혹은 ‘곤색’에 대해 오래 얘기했다.
네이비는 디자인과 로고에도 널리 쓰인다. 영국 국기 유니언 잭Union Jack, 메이저리그 야구 팀 시카고 화이트삭스White Sox와 뉴욕 양키스의 로고, 스웨덴의 유기농 포테이토칩 ‘스벤스카 랜트칩Svenska Lantchips’의 로고, 산타 마리아 노벨라의 로고, 밀러의 ‘Miller Lite Classic’ 패키지, 프랭클린 플래너 다이어리의 패키지, 영국의 산업 디자이너 닉 버틀러Nick Butler가 듀라셀과 컬래버레이션한 손전등 ‘Durabeam’ 패키지, 영국의 탄산수 ‘타이난트’의 패키지, 아쿠아 디 파르마의 패키지, 에르메스의 ‘블루 다인Blue Dine’ 세라믹 키친웨어, BMW의 자동차…. 하나같이 전통과 신뢰, 견고한 느낌, 그러면서도 과거의 것이 아니라 역동적인 에너지가 흐르는 느낌이다. 네이비가 메시지 전달에 효과적인 색이라는 증거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모자에 얼굴 표정 모양으로 펀칭을 한 네넷의 펠트 모자를 보면, 네이비가 얼마나 뉘앙스를 극대화해 전달할 수 있는지 알 수 있다.“네이비는 위엄 있고, 영적이고, 사내답다.” 앞서 얘기한, 청색을 섬기는 남자 프란츠 마르크의 말이다. 어떤가. 당신이 의도하는 바가 이와 같다면, 네이비 컬러 아이템부터 구비할 일이다.
EDITOR | 김보미
PHOTO | 김성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