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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WHITE2012-06-11

 

blanc.  

 

(왼쪽) 레터는 클레이숍. (오른쪽) 의자는 팬톤 클래식 by 비트라. 

 

 
“화이트, 화이트, 화이트! 화이트가 얼마나 중요한 지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하다. 화이트는 아주 영리한 색이다.” 미국의 컬러 전문가인 리트리스 아이즈먼Leatrice Eiseman의 얘기다. 사실 예전에 화이트는 컬러에 끼지 못했다. 화이트는 모든 색을 융합하면 만들 수 있지만, 다른 색을 만들어줄 수는 없다. 혈액 수혈 관계로 치면 AB형 같달까. ‘반쪽’ 취급을 받지만, 이건 화이트의 약점이기도 하고 강점이기도 하다.

 


“화이트는 ‘색’을 없앤 색이다. 그리고 이를 통해 대상의 본질을 가장 극명하게 드러내는 색이다. 블랙이 브랜딩Branding을 위한 최상위 전략이라면, 화이트는 ‘전략을 없앤 고도의 전략’이라 할 수 있다.” 매달 하나의 브랜드를 집중해 다루는 매거진 <B>의 편집장이자 브랜드 전문가인 최태혁의 말이다. 그렇다면 화이트를 잘 쓰는 브랜드, 화이트를 잘 쓰는 디자이너는 진짜 무서운 사람들이라 불러야 할지 모른다. 화이트는 잘 쓰면 돋보이지만, 까딱하면 밑천을 다 내보일 수 있는 컬러이므로 배포도 두둑해야 할 테고, 감각이 엥간히 예리하지 않으면 안 될 테니까.

 


화이트 컬러가 자주 등장하는 브랜드를 떠올리면 마틴 마르지엘라, 발렉스트라, 겐조키, 애플, 필립스, 토요타 등이 있다. 그중에서도 화이트 디자인의 대표 하면 애플이 아닐지. 애플은 아이폰, 아이팟, 아이패드 트리오로 일명 ‘넘사벽’의 위치에 다다랐다. 하지만 그간의 디자인을 생각하면 오히려 뒤늦게 대세가 된 감이 있다. 애플은 예전부터 새끈한 디자인을 뽑아왔으니까. 애플식 디자인의 효시는 1982년으로 봐야 한다.

 

 

 

만년필은 라미, 휴대전화는 아이폰, 워터 미스트는 겐조키, 서스펜션 조명은 필립스,

샌들은 지방시 by 무이, 요요는 빌락 by 10 꼬르소 꼬모.

 

 
애플 디자인은 산업 디자이너 하르트무트 에슬링거Hartmut Esslinger의 공이 크다. 그가 이끄는 디자인 회사 ‘프로그Frog’는 지난 1982년 애플과 계약을 맺고, 애플 디자인의 근간인 ‘스노 화이트 디자인 랭귀지Snow White Design Language’를 만들었다. 애플과 프로그의 첫 작품은 바로 매킨토시다. 네모반듯한 선과 살짝 둥글린 모서리, 그리고 화이트 컬러가 신선했다. 화이트는 선과 면과 뗄 수 없는 사이다. 화이트가 면을 분할해 만들어지는 선, 또 반대로 선이 모여 생기는 화이트 컬러의 면. 둘 다 강력한 디자인 요소다.

 


‘화이트 스페이스’에 대해 일찍이 주목한 이들이 있었으니, 일명 ‘스위스파’다. 1950년대 스위스에서 활동한 편집 디자이너들로, 에른스트 켈러Ernst Keller, 테오 발머Theo Ballmer, 막스 빌Max Bill 등이 있다. 이들은 ‘국제 타이포그래피 양식’을 만들었는데, 한마디로 줄을 깔끔하게 맞추되, 강조해야 할 정보는 눈에 띄게 디자인 하자는 거다. 그래서 시각적으로 통일성 있는 디자인들이 나왔다.

 

 

 

카메라는 다니아나 F+ 에델바이스, 메모패드는 슐리 by 북바인더스, 아이패드 케이스는 발렉스트라,

오브제는 메종 마틴 마르지엘라, 향수는 크리드.

 

 
다른 여러 분야의 아티스트들에게도 화이트는 중요한 색이다. 아주 간단히 마돈나만 떠올려봐도 그렇다. 팝 아이콘이자 패션 아이콘으로, 스타일 실험을 많이 하곤 하지만, 컬러 선택은 여지없이 블랙 또는 화이트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비틀스도 화이트와 인연이 있다. 비틀스의 앨범 재킷들은 대개 컬러풀하고 키치했다. 그런데 리처드 해밀턴Richard Hamilton이 디자인을 맡은 아홉 번째 정규 앨범은 좀 다르다. 백지 중간에 비틀스의 이름을 엠보싱으로 새겨 넣고 구석에 일련번호를 찍었다. 이게 전부였다. 대량생산되는 상품인 음반이 예술 작품으로 올라서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비틀스 역시 대중음악을 하는 밴드에서 예술가의 지위를 얻는, 작지만 중요한 시점 중 하나가 됐다.
 


화이트는 점잖고, 천연덕스럽고, 영적이고, 순진무구하고, 간결하고, 음란하고, 호사스럽고, 존재하지 않는 한편 존재한다. 화이트는 한마디로 수 없이 많은 뉘앙스를 가지는 컬러인 셈이다.

 

 

 

 


EDITOR | 김보미

PHOTO | 이수현

 

 

 


* 보다 자세한 내용은 <로피시엘 옴므> 2012년 6월호를 통해 만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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